빠지지 말고 걸어서 건너 갑시다
1.
여러분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날도 차고 오시는 길도 쉽지 않으셨을 터인데
용기를 내어 오신 것 정말 잘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반듯이 훨씬 더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2.
저는 지난 3차 집회 이후 비교적 잘 지냈습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제 속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봐서는
이전 체력의 7-80%는 회복 된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주일 설교와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다시 설교를 하고 집회를 할 수 있다는게 너무 감사하고
무엇보다 즐거워 적당한 활동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3.
항암 후 첫 번 찍은 CT에 뭔가가 보여서
한 달 만에 다시 재촬영을 했었습니다.
암일까 염려했었지만 감사하게도 암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그게 암이었다면 의사 선생님 말씀이 1년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한 번 암에 걸렸다는게 얼마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가끔 수술한 가슴에 띠끔 띠끔 아주 작지만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호흡도 100% 시원하지 않고 뭔가 10%에서 15% 정도 답답합니다. 그런것이 느껴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과연 내가 이 암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울해지고 삶이 무거워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암은 바다 같습니다.
잔잔한 바다도 저는 무서운데
폭풍이는 바다 같습니다.
암의 바다에 자꾸 자꾸 빠지게 됩니다.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지요?
당연한 일이니
부끄러워 하실 것 없습니다.
세상에 폭풍이는 바다에 던져 졌는데 빠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포기하지는 마세요.
단념하지는 마세요.
끝까지 한 번 발버둥질 쳐 보세요.
5.
오늘 본문의 말씀은 풍랑이는 바다에서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저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끝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저는 이 결론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힘으로 싸워 이길 수 없는 풍랑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배로 영접함으로
풍랑을 이겨내고 무사히 가려던 땅에 이르렀던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암에 걸려 보니
그래서 암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니
알면 알 수록 암은 우리가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바다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로 영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6.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찬송가 585장이 떠 올랐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구냐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우리가 싸우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릴 대신하여 싸워주신다면
패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7.
승부는 '예수님 만남'과 '예수님 영접'에 걸려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후 급히 제자들을 배로 건너편에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도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한 자리 하겠다는 그릇된 야망을 갖고 있던 제자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급히 제자들을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기 싫었을 겁니다. 벳세다에 머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순종하여 배를 젓는데 풍랑이 일었습니다. 맞바람이 불었습니다. 좋은 핑게거리가 생긴 셈입니다. 풍랑과 바람을 핑게대고 돌아와도 되는데 제자들은 풍랑과 바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인들의 순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에게로 오십니다.
순종은 하나님 만남의 자리입니다.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순종하기 위하여 발버둥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바다와 싸우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으니 제자들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자신들이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기뻐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때 제자들이 풍랑과 바람을 핑게 대고 뱃머리를 벳세다로 향하다가 예수님과 마주쳤다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얼마나 난처했겠습니까? 예수님과 마주쳤다고 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마주침이지 만남이 아닙니다. 만일 그랬었다면 저들은 아마 그 때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지 못하고 피하고 숨고 싶었을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순종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는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자 사람의 힘으로, 평생으로 바다에서 잔 뼈가 굵은 제자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풍랑이 잔잔해지고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는 저들이 가려고 하였던 땅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는 하나님 만남이 이루어질 때 풀리고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바람을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만나고 우리 삶의 배로 영접해 드리는 순간 모든 삶의 문제는 풀리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이 베드로는 신기했습니다.
자기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바다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암 환자와 그 보호자들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암에 걸려보니 암은 정말 풍랑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9.
이 큰 풍랑이는 이는 바다와 같은 암을 걸어서 건널 수는 없을까요?
무사히 걸어서 우리가 가려는 땅에 도착할 수는 없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어떻게 큰 풍랑이는 바다와 같은 암의 바다를 걸을 수 있을까요?
걸어서 건널 수 있을까요?
예수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 예수를 붙잡으면 됩니다.
그리고 믿으면 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그러나
불안하여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맞추지 않고
바다를 보는 순간
암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암친구 여러분
보호자 여러분
우리 이 큰 풍랑이는 바다와 같은 암의 바다를 걸어서 건넙시다.
그 바다에 빠지지 말고 걸어서 건너 가십시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이 큰 풍파를 이겨내고 건너가십시다.
10.
아무리 험한 풍랑이는 바다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빠지지 않고
그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암친구 여러분
우리 한 번 암의 바다에 빠져들지 말고
한 번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만 바라봄으로
그 암의 바다를 한 번 걸어서 건너 보십시다.
11.
암에 걸리면 불안에 빠집니다.
불안은 우리 암환자들이 보편적으로 잘 빠지는 암의 바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에서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불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요?
불안의 반대는 평안입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리고 하나님처럼 여기고 섬기는 돈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줄 수는 있어도 '평안함'을 줄 수는 없습니다. 평안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평안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힘과 권력으로 살 수 없습니다.
평안은 오직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아멘.
12.
항암이 끝난 후 CT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 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술한 폐 아래 쪽에 뭔가 히끗히끗한 것이 보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걱정하셨습니다.
아닐 경우도 있지만 이게 만일 재발 되거나 새로 생겨난 암이라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뒷 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한 달 후에 다시 ct를 찍기로 하였습니다.
당연히 우울해졌습니다.
불안해졌습니다.
한 달 후 다시 ct를 찍고 며칠 후 그 결과를 보러 병원엘 갔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
날마다 기막힌 새벽 설교 두 편을 녹화하였습니다.
설교를 하고 찬송을 부르는데 그 때 부른 찬송이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이라는 찬송이었습니다.
부르는데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라는 가사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조금 후 병원에 가서 듣게 될 말은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암이 아닙니다.
재발 되셨습니다.
첫 번 째 길로 간다면 당연히 겁낼 것 없겠지요.
그러나 두 번째라면 당연히 겁나겠지요.
그런데 찬송은 '어디를 가든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간다면 두 번 째 길을 가도 겁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동의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 속에서 불안이 안개 걷히듯 걷혔습니다.
평화는
평안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겁니다.
은혜로 말입니다.
그 쏟아지는 주의 평안을 비처럼 맞으며 병원엘 갔습니다.
의사가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불안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설마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함께 가면 겁없네'라는 찬송을 믿음으로 부르며 예수를 바라보는 순간
저는 불안의 바다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주가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ct 결과도 암이 재발 된게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제 마음의 평화와 평안은 그 판명 후에 찾아 온게 아니고 그 전에 찾아왔었다는게 중요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믿어짐으로 불안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13.
우리 암 환자들이 빠지는 또 하나의 바다는 '허망'입니다.
암에 걸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다 허망해 집니다.
모든 것이 다 의미 없어집니다.
허무해 집니다.
아직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시간까지 다 죽입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고 뭔가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합니다.
허망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암 환자들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의 시간보다 더 귀합니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보편적으로
상식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보다 짧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요.
지난 번 CT촬영에서 다시 암이 재발 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면
제 잔여 수명은 일 년 미만이었을꺼라고 의사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다 귀하지만
특히 우리 암 환자들의 생명은 귀합니다.
그 귀한 생명이 허망의 바다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버려 버리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불안해 하고 우울해하는데 다 써 버리고 있습니다.
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 때
가장 견디기 어려웠을 때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앉아 있을 힘은 고사하고
누워 있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서툴기도 하고
사탄의 방해도 있고해서
녹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첫 방송 녹화는 18시간 만에 완성 되었습니다.
CMP 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집회 때에는 들것에 실려갈 뻔 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했더니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수 있는 시간들이
오히려 가장 의미있고 보람된 시간들로 바뀌었습니다.
허망과 허무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14.
우리 암 환자들의 생명은 그렇지 않은 분들의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물론 예외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암에 걸리지 않은 분들보다 남은 생명의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더 귀합니다.
그 귀한 시간을 암의 바다에 빠져
아직 남아 있는 귀한 시간과 힘을 절망하고 낙심하는데만 쓰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잠시라도 아픔이 멈추고 통증이 멈추면 다시 찾아 올 아픔과 통증을 겁내며 불안해 하는데 시간 보내지 말고 아플 땐 다시 아프더라도 숨 쉴만 하면 그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보십시다.
성경을 읽는다든지
찬송을 부른다든지
우리를 돌보아 주는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든지
그게 암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암의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요즘 안하던 짓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건 싱크대에 아내가 버려둔 것들이 보이면 설겆이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끔 밥도 짓습니다.
얼마 전에는 김치 찌게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물론 먹기 쬐끔 힘들게 됬지만 그래도 기분 좋았습니다.
15.
암에 걸리고
특히 항암 때 몸이 너무 힘들고 괴로우니
짜증과 화가 많이 늘었습니다.
요즘 저는 그 짜증과 화와 싸움 중입니다.
제법 잘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가 인정해 줄는지 잘 모르겠으나
요즘 저는 암에 걸리기 전 보다 훨씬 짜증이 줄었습니다.
화내는 일이 줄었습니다.
나를 돌보아 주는 아내와 가족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게 하려고
몸 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도 힘들어하지 않게 하려고 부족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믿음으로 암의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6.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람이 바다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불안해 하고
우울해 하고
짜증내고
원망하고
불행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암의 바다에 빠진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를 우리의 삶에 영접함으로
그걸 이겨낸다는 건
마치 풍랑이는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건 근사한 일입니다.
근사함을 넘어 훌륭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보호자 여러분
암의 바다에 빠지지 말고
걸어서 건너십시다.
걸어서 건너가 보십시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빠지지 말고 걸어서 건너 갑시다
1.
여러분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날도 차고 오시는 길도 쉽지 않으셨을 터인데
용기를 내어 오신 것 정말 잘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반듯이 훨씬 더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2.
저는 지난 3차 집회 이후 비교적 잘 지냈습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제 속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봐서는
이전 체력의 7-80%는 회복 된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주일 설교와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다시 설교를 하고 집회를 할 수 있다는게 너무 감사하고
무엇보다 즐거워 적당한 활동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3.
항암 후 첫 번 찍은 CT에 뭔가가 보여서
한 달 만에 다시 재촬영을 했었습니다.
암일까 염려했었지만 감사하게도 암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그게 암이었다면 의사 선생님 말씀이 1년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한 번 암에 걸렸다는게 얼마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가끔 수술한 가슴에 띠끔 띠끔 아주 작지만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호흡도 100% 시원하지 않고 뭔가 10%에서 15% 정도 답답합니다. 그런것이 느껴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과연 내가 이 암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울해지고 삶이 무거워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암은 바다 같습니다.
잔잔한 바다도 저는 무서운데
폭풍이는 바다 같습니다.
암의 바다에 자꾸 자꾸 빠지게 됩니다.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지요?
당연한 일이니
부끄러워 하실 것 없습니다.
세상에 폭풍이는 바다에 던져 졌는데 빠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포기하지는 마세요.
단념하지는 마세요.
끝까지 한 번 발버둥질 쳐 보세요.
5.
오늘 본문의 말씀은 풍랑이는 바다에서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저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끝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저는 이 결론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힘으로 싸워 이길 수 없는 풍랑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배로 영접함으로
풍랑을 이겨내고 무사히 가려던 땅에 이르렀던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암에 걸려 보니
그래서 암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니
알면 알 수록 암은 우리가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바다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로 영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6.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찬송가 585장이 떠 올랐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구냐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우리가 싸우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릴 대신하여 싸워주신다면
패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7.
승부는 '예수님 만남'과 '예수님 영접'에 걸려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후 급히 제자들을 배로 건너편에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도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한 자리 하겠다는 그릇된 야망을 갖고 있던 제자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급히 제자들을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기 싫었을 겁니다. 벳세다에 머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순종하여 배를 젓는데 풍랑이 일었습니다. 맞바람이 불었습니다. 좋은 핑게거리가 생긴 셈입니다. 풍랑과 바람을 핑게대고 돌아와도 되는데 제자들은 풍랑과 바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인들의 순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에게로 오십니다.
순종은 하나님 만남의 자리입니다.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순종하기 위하여 발버둥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바다와 싸우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으니 제자들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자신들이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기뻐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때 제자들이 풍랑과 바람을 핑게 대고 뱃머리를 벳세다로 향하다가 예수님과 마주쳤다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얼마나 난처했겠습니까? 예수님과 마주쳤다고 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마주침이지 만남이 아닙니다. 만일 그랬었다면 저들은 아마 그 때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지 못하고 피하고 숨고 싶었을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순종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는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자 사람의 힘으로, 평생으로 바다에서 잔 뼈가 굵은 제자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풍랑이 잔잔해지고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는 저들이 가려고 하였던 땅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는 하나님 만남이 이루어질 때 풀리고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바람을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만나고 우리 삶의 배로 영접해 드리는 순간 모든 삶의 문제는 풀리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이 베드로는 신기했습니다.
자기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바다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암 환자와 그 보호자들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암에 걸려보니 암은 정말 풍랑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9.
이 큰 풍랑이는 이는 바다와 같은 암을 걸어서 건널 수는 없을까요?
무사히 걸어서 우리가 가려는 땅에 도착할 수는 없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어떻게 큰 풍랑이는 바다와 같은 암의 바다를 걸을 수 있을까요?
걸어서 건널 수 있을까요?
예수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 예수를 붙잡으면 됩니다.
그리고 믿으면 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그러나
불안하여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맞추지 않고
바다를 보는 순간
암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암친구 여러분
보호자 여러분
우리 이 큰 풍랑이는 바다와 같은 암의 바다를 걸어서 건넙시다.
그 바다에 빠지지 말고 걸어서 건너 가십시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이 큰 풍파를 이겨내고 건너가십시다.
10.
아무리 험한 풍랑이는 바다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빠지지 않고
그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암친구 여러분
우리 한 번 암의 바다에 빠져들지 말고
한 번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만 바라봄으로
그 암의 바다를 한 번 걸어서 건너 보십시다.
11.
암에 걸리면 불안에 빠집니다.
불안은 우리 암환자들이 보편적으로 잘 빠지는 암의 바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에서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불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요?
불안의 반대는 평안입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리고 하나님처럼 여기고 섬기는 돈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줄 수는 있어도 '평안함'을 줄 수는 없습니다. 평안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평안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힘과 권력으로 살 수 없습니다.
평안은 오직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아멘.
12.
항암이 끝난 후 CT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 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술한 폐 아래 쪽에 뭔가 히끗히끗한 것이 보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걱정하셨습니다.
아닐 경우도 있지만 이게 만일 재발 되거나 새로 생겨난 암이라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뒷 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한 달 후에 다시 ct를 찍기로 하였습니다.
당연히 우울해졌습니다.
불안해졌습니다.
한 달 후 다시 ct를 찍고 며칠 후 그 결과를 보러 병원엘 갔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
날마다 기막힌 새벽 설교 두 편을 녹화하였습니다.
설교를 하고 찬송을 부르는데 그 때 부른 찬송이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이라는 찬송이었습니다.
부르는데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라는 가사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조금 후 병원에 가서 듣게 될 말은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암이 아닙니다.
재발 되셨습니다.
첫 번 째 길로 간다면 당연히 겁낼 것 없겠지요.
그러나 두 번째라면 당연히 겁나겠지요.
그런데 찬송은 '어디를 가든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간다면 두 번 째 길을 가도 겁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동의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 속에서 불안이 안개 걷히듯 걷혔습니다.
평화는
평안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겁니다.
은혜로 말입니다.
그 쏟아지는 주의 평안을 비처럼 맞으며 병원엘 갔습니다.
의사가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불안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설마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함께 가면 겁없네'라는 찬송을 믿음으로 부르며 예수를 바라보는 순간
저는 불안의 바다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주가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ct 결과도 암이 재발 된게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제 마음의 평화와 평안은 그 판명 후에 찾아 온게 아니고 그 전에 찾아왔었다는게 중요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믿어짐으로 불안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13.
우리 암 환자들이 빠지는 또 하나의 바다는 '허망'입니다.
암에 걸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다 허망해 집니다.
모든 것이 다 의미 없어집니다.
허무해 집니다.
아직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시간까지 다 죽입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고 뭔가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합니다.
허망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암 환자들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의 시간보다 더 귀합니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보편적으로
상식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보다 짧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요.
지난 번 CT촬영에서 다시 암이 재발 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면
제 잔여 수명은 일 년 미만이었을꺼라고 의사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다 귀하지만
특히 우리 암 환자들의 생명은 귀합니다.
그 귀한 생명이 허망의 바다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버려 버리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불안해 하고 우울해하는데 다 써 버리고 있습니다.
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 때
가장 견디기 어려웠을 때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앉아 있을 힘은 고사하고
누워 있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서툴기도 하고
사탄의 방해도 있고해서
녹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첫 방송 녹화는 18시간 만에 완성 되었습니다.
CMP 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집회 때에는 들것에 실려갈 뻔 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했더니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수 있는 시간들이
오히려 가장 의미있고 보람된 시간들로 바뀌었습니다.
허망과 허무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14.
우리 암 환자들의 생명은 그렇지 않은 분들의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물론 예외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암에 걸리지 않은 분들보다 남은 생명의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더 귀합니다.
그 귀한 시간을 암의 바다에 빠져
아직 남아 있는 귀한 시간과 힘을 절망하고 낙심하는데만 쓰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잠시라도 아픔이 멈추고 통증이 멈추면 다시 찾아 올 아픔과 통증을 겁내며 불안해 하는데 시간 보내지 말고 아플 땐 다시 아프더라도 숨 쉴만 하면 그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보십시다.
성경을 읽는다든지
찬송을 부른다든지
우리를 돌보아 주는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든지
그게 암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암의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요즘 안하던 짓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건 싱크대에 아내가 버려둔 것들이 보이면 설겆이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끔 밥도 짓습니다.
얼마 전에는 김치 찌게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물론 먹기 쬐끔 힘들게 됬지만 그래도 기분 좋았습니다.
15.
암에 걸리고
특히 항암 때 몸이 너무 힘들고 괴로우니
짜증과 화가 많이 늘었습니다.
요즘 저는 그 짜증과 화와 싸움 중입니다.
제법 잘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가 인정해 줄는지 잘 모르겠으나
요즘 저는 암에 걸리기 전 보다 훨씬 짜증이 줄었습니다.
화내는 일이 줄었습니다.
나를 돌보아 주는 아내와 가족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게 하려고
몸 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도 힘들어하지 않게 하려고 부족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믿음으로 암의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6.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람이 바다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불안해 하고
우울해 하고
짜증내고
원망하고
불행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암의 바다에 빠진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를 우리의 삶에 영접함으로
그걸 이겨낸다는 건
마치 풍랑이는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건 근사한 일입니다.
근사함을 넘어 훌륭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보호자 여러분
암의 바다에 빠지지 말고
걸어서 건너십시다.
걸어서 건너가 보십시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